2026-02-12 15:11 (목)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맨박스’에 갇힌 사람들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맨박스’에 갇힌 사람들
  • 지은우 기자
  • 승인 2026.02.12 1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맨박스(Man Box)’라고 불리는 현상들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맨박스는 남성은 이래야 한다라는 남성성에 대한 강요를 말한다. ‘이퀴문도(Equimundo)’라는 영국의 한 단체는 ‘2025 미국·영국 남성 실태조사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일수록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 생각을 6.3배 더 많이 했다고 밝혔다. 미국 남성 10명 중 8명은 가족 부양침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받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한국 남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이 남성들을 맨박스에 갇히게 했을까?

 

남성성으로 인한 피해들

맨박스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에게 강요되는 전통적이고 고정적인 남성성의 규범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미국의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Tony Porter)가 자신의 강연과 저서 맨박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개념이다. 또 그는 지난 2009년의 TED 강연에서 남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울면 안 된다”, “약하면 안 된다”,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내면화하면서, 감정을 억누르고 지배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사회화된다고 지적했다.

맨박스는 크게 자립성 강인함 외모 경직된 성 역할 이성애 중심주의 과도한 성적 능력 통제와 폭력의 일곱 가지 규범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립성은 남성이라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을 의미한다. ‘강인함은 두려움이나 불안을 표현하지 않고 언제나 강해야 한다는 기대를 반영한다. ‘외모는 남성이 외모나 패션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행위로 규정한다. ‘경직된 성 역할은 가사노동이나 육아는 여자의 일로, 남성은 반드시 생계유지자로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성애 중심주의는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을 포함한다. ‘과도한 성적 능력은 남성은 많은 성적 파트너를 가져야 하며, 성관계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왜곡된 기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제와 폭력은 남성이 존중받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관계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포함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유교적 세계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따라서 한국인에게도 충분히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유교적 문화가 아닌 외국에서도 이러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토니 포터의 이러한 주장은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그가 참여한 국제 연구 프로젝트 집단은 미국·영국·멕시코 등 3개국의 남성 18~301,000여 명을 대상으로 맨박스의 사회적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전통적인 남성 규범을 강하게 내면화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폭력적 행동, 성차별적 태도, 위험한 음주 및 감정 억압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남자는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라는 믿음을 가진 남성의 54%감정적 대화를 회피한다고 답했으며, ‘남자는 항상 강해야 한다고 믿는 응답자의 47%분노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는 이러한 맨박스가 남성 개인의 심리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남자는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남성일수록 우울감과 고립감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고, 정신 건강 전문가나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은 현저히 낮았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료에서도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약 4배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감정 표현의 억압과 사회적 고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구조적 문제지만 개인적인 균형감 찾기

전문가들은 이 맨박스가 그저 남성들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만약 남성들이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면서 이러한 상태를 지배와 통제를 해야 하는 남성이 가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라고 받아들이게 되면, 여성들이나 다른 남성들에 대해 권력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아내나 가족에게 더욱 억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족 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협력과 신뢰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맨박스라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도 있다. 일부 심리학자와 보수 성향의 평론가들은 이 개념이 남성성의 긍정적 측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맨박스가 남성에게 내재된 희생, 책임감, 보호 본능, 용기 등의 전통적 가치까지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역사적으로 남성의 역할은 가족 부양, 공동체 보호, 위기 상황에서의 결단 등 사회 유지와 발전에 기여해 온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치도 박스라는 부정적 표현까지 쓰는 것은 남성적 책임감과 헌신까지 문제시하는 내용이라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남성적 특성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모든 형태의 남성다움이 독성(Toxic)’으로 규정되는 것은 개별적 차이를 무시한 과도한 일반화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남성다움을 추구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반드시 사회적 병폐의 원인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반론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맨박스는 서구 사회보다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문화에서도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유교적 가부장제와 군사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남성은 여전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남성들이 가사와 육아의 공동 분담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경제적 부담은 남성이 더 져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인식은 남성의 역할을 여전히 가족 부양자로 규정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라는 식의 말들은 남성이 슬픔이나 불안을 표현하는 것을 약함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암묵적인 규범들은 남성들이 우울이나 불안, 정서적 외로움을 겪더라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만들며, 실제로 남성의 정신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특히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구조로 인한 역차별이라는 담론이 크게 확산됐고, 이제는 젠더 갈등의 핵심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역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갖는 것도 물론 도움이 된다. 따라서 혹시나 자신이 맨박스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역차별 문제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1125호 (여의도동,여의도파라곤)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운정
  • 법인명 : 종합시사매거진
  • 제호 : 종합시사매거진
  • 등록번호 : 서울,아54884
  • 등록일 : 2011-02-22
  • 발행일 : 2011-02-22
  • 발행인 : 정하연
  • 편집인 : 정하연
  • 종합시사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종합시사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