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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10-05 21:41 (월) 로그인회원가입
컬처노믹스

점점 부유해지는 한국, 점점 팍팍해지는 국민

Desk Culumn

최근 경제 지표만 보면 한국은 분명 더 잘사는 나라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26년 8월 수출은 982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한 수치이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209%에 달했으며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3.7% 성장했으며, 실질 국민총소득도 전년 동기 대비 15.6%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누가 봐도 ‘잘나가는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가 모든 국민의 체감경기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7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4% 감소했고,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55.6에 머문 상태이다. 15~29세 청년고용률은 44.1%로 28개월째 하락하는 흐름이며, 2분기 말 가계신용은 2,000조에 달하고 있다. 국가의 성적표는 좋아지고 있지만, 국민이 자신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기는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반도체처럼 세계적 호황을 누리는 산업에는 성과급과 투자가 몰리지만, 서비스업과 건설업, 자영업이 같은 속도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또 주가가 오르고 국가총소득이 늘어도 빚에 눌린 가계가 곧바로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실제 우리 국민이 잘살고 있냐 하면 이 부분에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수밖에 없다.

‘성장률’ 자체가 중요하진 않다

흔히 말하는 ‘경제 성장’이라는 말은 ‘평균’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 국민 모두가 잘살게 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만든 경제가 성장했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경제 성장은 성과급과 자산 상승의 기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른 임대료와 줄어든 손님, 불안정한 일자리에 관한 생계의 문제이다. 그래서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한국 경제가 성장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자신의 월급과 일자리, 가게 매출이 나아졌는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부가 커져도 그 부가 특정 산업과 자산 보유자에게만 머문다면, 국민 다수가 성장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경제학에서 지적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소득 통계를 정립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1934년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국민의 복지를 국민소득 수치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경고했다. 국민소득은 생산된 경제적 가치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그 소득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는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만은 아니다. 《맹자》에는 자신이 이웃 나라의 군주보다 백성을 잘 다스린다고 생각했던 양혜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맹자는 왕에게 이렇게 간언했다.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의 부가 증가했더라도 그 부가 권력자와 일부 계층에 머물러 있다면 좋은 정치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사다리’로서의 국가 역할에 지금보다 더욱 충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팍팍한 오늘의 현실을 건너, 국민 전체가 이룬 부를 향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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