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의 신풍속도
한국의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2%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한 것으로, 5개월 만에 2%대를 기록한 것이다. 농축수산물 가격도 전년 대비 1.9% 상승했고, 특히 무와 배추 가격은 각각 79.5%, 66.8%까지 급등했다. 이러한 상승은 기상 악화로 인한 산지 출하 물량 감소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지만, 가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반 물가 상승과 다를 바 없다. 또 1월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7.3% 상승했고, 휘발유와 경유 가격도 각각 9.2%, 5.7% 올랐다. 또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유지하면서 수입 물가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리려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지고 있다.

런치 노마드, 편도족 등장
식비를 줄이는 것은 고물가 시대의 대표적인 신풍속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각종 음식값이 부쩍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에 따르면, 삼겹살(200g)의 평균 가격은 1만 7,366원으로, 3년 전 가격인 1만 5,025원과 비교하면 15.5%(2,341원) 상승했다. 비빔밥(1인분)도 3년 전보다 22.3%(1,718원) 올랐고, 삼계탕은 16.1%(2,336원), 서민들이 즐겨 찾는 김치찌개 백반은 20.7%(1,413원) 올랐다. 서민들이 늘 즐겨 먹는 이런 음식들이 15~20%나 상승했다는 것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서민은 우선 식비부터 줄이려 한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의 76.7%가 구내식당을 직원 복지를 위한 중요한 제도로 평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도 구내식당 이용 이유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식비 절감(49.5%)’을 꼽을 정도였다. 이렇게 구내식당을 이용하면 직장인들은 한 달에 10만~30만 원가량의 식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구내식당이 없는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런치 노마드(Lunch Nomad)족’으로 생활하고 있다. 보다 값싼 점심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사람들을 뜻한다. 요즘은 한 끼에 1만 원을 훌쩍 넘는 외식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1인당 1만 원이 넘지 않는 뷔페식 점심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곳들은 점심 시간이 되면 줄을 서는 사람으로 넘쳐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것도 현실적이다. 4,000원 안팎의 라면과 잔치국수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직장인들도 늘어났다. 분식점 운영자들은 “과거에 비하면 혼자 와서 라면과 깁밥 등을 간단히 먹고 가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모두 팍팍한 식비를 고려해 절약하려는 모습이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계속 상승 중이며, 전년 대비 매출 상승률은 15~20%에 이를 정도다. 이러한 도시락을 주로 찾는 소비자들은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족)’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선물 구매 비용까지 절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명절 선물세트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당근마켓에서 거래하면 포장을 뜯지 않은 새 제품을 정가 대비 30~50%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상품, 리퍼 제품 구매
쇼핑몰에서의 구매 패턴도 바뀌고 있다. 주로 초가성비 상품 기획전을 이용하며, 리퍼 제품도 마다하지 않는다. 리퍼 제품은 사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상 가격으로 판매하기 어려운 전시 상품, 미세한 흠집이 있는 상품, 이월·단종·재고 상품을 정상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뷰티나 리빙 종류의 제품은 적게는 400%, 많게는 1,000%까지 구매율이 높아졌다.
PB 상품과 아웃렛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PB 상품이란 제품 유통사가 만든 자체 브랜드 상품이다. 이러한 상품의 시장 역시 매년 10% 이상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백화점 대신 아울렛을 찾는 소비자도 증가하고 있다. 또 할인 애플리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마감 임박 상품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대체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과가 너무 비싸면 조금 저렴한 망고를 사거나, 국내산 제품이 너무 비쌀 경우 수입산을 구매하는 것이다. 비록 품질은 조금 떨어질 수 있어도 비슷한 맛을 내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다고 한다.

연휴 기간에도 여행을 가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 설문조사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에 여행 계획이 없는 직장인은 전체의 38.7%를 차지했고, 해외여행을 떠난 경우는 13.9%에 그쳤다. 여행 대신 주로 가족 모임, 집안일 정리하기, 영화·드라마 감상 등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은 지금보다 수익을 더욱 늘리기 위해 ‘N잡러’에 뛰어들고 있다. N잡러란 두 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보험 영업은 기존의 직장을 유지하면서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꽤 좋은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다. 메리츠화재의 ‘메리츠 파트너스’는 N잡러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영업 플랫폼이다. 이곳의 참여자 수는 개설 9개월 만에 4,000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성원들의 직업도 매우 다양하다. 대기업 직장인, 의사, 자영업자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N잡러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약 150만 원에 육박해 ‘짭짤하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아예 ‘무지출 챌린지’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단톡방을 만들어 지출이 거의 없는 생활을 공개하고, 서로 용기를 북돋는다. 때로는 과도한 소비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하며 질책을 듣기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젊은 연인의 경우 데이트 비용 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데이트 통장 목적으로 모임 통장을 만든 사람들의 연령대는 90%가 20~30대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은 데이트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임 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식사를 하거나 포인트 및 제휴 할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아예 데이트 횟수 자체를 줄이기도 한다. 심지어 ‘선물 구입 자제’를 통해 데이트 비용을 절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공정성 논란’도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함께 먹기 위해 치킨이나 피자를 시켰을 때 “남자친구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다”라며 불만을 토로하거나, 술집에서 “여자친구가 나보다 술을 더 마시는데 과연 반반으로 내는 것이 맞느냐”는 식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민들이 소비를 줄이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경제는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2025년에도 이어지는 고물가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 아끼고 절약하는 생활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