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논객이 이재명 대표에게 호감?

비상계엄령 이후 국민의힘 당전략기획특별위원회에서는 ‘국민의힘,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그런데 3월 초부터는 이 세미나를 중단했다. 대통령이 탄핵 재판을 받고 있는 과정에서 더 이상 이런 논의가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이 상징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상당한 혼란과 내홍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당이 스스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매우 심각한 상태에 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는 역설적으로 국민의힘이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인용되든, 기각되든 이와는 별개로 자신의 전략을 세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몸이 되는 것을 넘어서 어깨에 짊어지고 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올 정도이다. 이는 곧 윤 대통령에 대한 관점에 따라서 보수 세력 자체가 분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우 강한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 온 김진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조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강한 비판을 한 바가 있다. 그는 계엄령 사태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과의 거리 두기를 시도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제대로 된 재건의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 정당 내부에서조차 분열된 상황에서 차기 주자의 부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암울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의힘은 좀 더 극우의 길을 걷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야권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국민의힘 당 대표다’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전광훈 목사는 태극기 집회를 가장 주도적으로 개최하며 극우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일부 중도 보수 성향이 강한 정치 평론가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와 친화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원래 그들에게 이재명 대표는 ‘절대로 용서하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비교하면서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이었던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지난 3월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재명 대표와 100분간의 대담을 나눈 후 그에 따른 후기까지 방송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선일보 ‘절독’ 운동 부추켜
“깜짝 놀랐다. 이 대표가 말을 굉장히 빨리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야말로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풍만해서 뻗쳐 나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 지금 정치에 완전히 물이 올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주어지는 문제를 순간적으로 점검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긴장을 유지하는 수준이 상당히 깊이가 있었다. 팽팽한 사고가 유지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대선 과정에 들어가 자유 토론을 하게 되면 어떤 후보가 토론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간 절대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었던 야당의 대표에 대해서 이 정도의 말을 한다는 것은 ‘극찬’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선에서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로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수의 분화 가운데에서 또 한 명 주목해야 할 사람은 바로 조갑제 대표이다. 그는 조선일보 출신으로 역시 평생을 보수의 논리를 전파하며 정치 평론을 해왔다. 그 역시 지난 3월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윤 대통령의 파면을 강력하게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복귀시켜서 국군 통수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앞으로 수시로 계엄령을 하라는 면허증을 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로서 군을 통솔할 수 있겠느냐. 군 장교단이 윤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겠느냐. 그것까지 다 고려한다면 8대 0 전원 일치 이외의 시나리오는 법률가들의 머릿속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러한 보수의 분화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의 ‘조선일보 절독 운동’까지 등장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이제까지 조선일보는 보수 신문으로 규정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보수층이든, 진보층이든 조선일보라면 단연 보수의 가장 선두에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해 온 매체이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은 ‘조선일보는 보수가 아니니 절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6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의 신혜식 씨는 방송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이 유죄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씌워진 혐의는 조작된 정치 탄압이다. 가짜 보수, 친민주당적 행태를 보이는 조선일보,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제는 조선일보 같은 가짜 보수 언론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조선일보가 국민을 속이고 좌파 프레임에 동조한다면 국민이 나서서 절독 운동을 펼쳐야 한다.”
또 150만 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배승희TV의 배승희 변호사도 매우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자중하라는 조중동, 이준석 띄우고 한동훈 띄우고 윤석열 끌어내리기에 앞장섰던 사람들, 바로 조중동이다. 레거시 언론 전부가 윤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다. 저희가 벌였던 조선일보 절독 운동, 결과가 나오고 있다. 권력이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했다. 보수의 탈을 쓰고, 사실 보수가 아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보여주었던 입장과는 180도 달라진 셈이다.
이러한 보수의 분화는 분명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와 맞물려 있다. 그리고 향후 윤 대통령의 행보와 함께 더욱더 극적이고 격정적인 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