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 생사에는 좌우가 없다
1623년 3월 능양군이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킨다. 강계부사에 올랐으나 실각한 김류와 함경도 병마 절도사로 부임해 배치 직전이었던 이괄, 평산부사로 재직중이던 이귀 등이 군사를 모아 한성으로 진격했다. 조정은 중도에 반란 계획을 눈치 챘음에도 진압군의 패배와 능양군의 내응으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광해군은 폐위되고 능양군이 왕좌에 앉게 된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것이다. 광해군과 반목했던 인목대비는 능양군의 양위교서를 내리면서 광해군 폐위 이유를 세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왕위를 위해 혈육을 살해하고 자신을 유폐 시킨 것이며 둘째는 과도한 토목 공사로 인해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 세번째는 명나라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고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점이다. 실리를 중시하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이어나가던 광해와 달리 인조는 대명 사대주의를 따랐다. 국력이 쇠하고 후금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던 명을 따른 것은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한 탓이다. 하지만 대명 사상은 반정의 명
2017.10.11
5
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