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수가 아니라 산이 무너졌다
이번 사태는 처음에는 집중호우나 빙하호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도 거론됐다. 하지만 위성사진과 지진파, 현장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고산지대에서 거대한 얼음과 암석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것이 재난의 출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너진 물질은 가파른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강바닥의 흙과 돌을 계속 끌어들였고 물과 뒤섞이며 파괴력이 훨씬 커졌다. 특히 재난이 발생하기 직전 이 지역에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계속된 빙하의 움직임과 높은 기온, 늘어난 빙하 녹은 물과 고산지대에서 얼어 있던 땅의 약화 등이 빙하와 암석이 맞닿는 지점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번 붕괴 하나를 두고 기후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 얼음이 녹고 얼어 있던 땅이 풀리면 산비탈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빙하와 암석의 붕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단순히 폭염이나 폭우를 늘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얼음으로 지탱되어 왔던 산 자체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가 네팔의 한 지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히말라야와 힌두쿠시 지역은 세계에서도 빙하가 빠르게 줄어드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의 빙하 손실 속도는 최근 들어 이전보다 크게 빨라졌고,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금세기 말에는 현재 빙하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히말라야의 눈과 얼음은 단순한 자연경관이라고 볼 수 없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강들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식수와 농업, 전력 생산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빙하가 녹으면 단순히 물이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빙하가 후퇴한 자리에는 새로운 빙하호가 생기고, 얼어 있던 지반이 녹으면서 산사태와 암석 붕괴의 위험도 함께 높아진다. 여기에 폭우까지 겹치면 하나의 작은 붕괴가 산사태와 빙하호 붕괴, 홍수로 이어지는 연쇄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있었던 경고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히말라야에서는 비슷한 재난이 반복돼왔다. 2023년 인도 시킴에서는 해발 5,000m가 넘는 곳의 남로낙 빙하호가 터지면서 거대한 홍수가 발생했다. 수력발전 시설과 여러 교량이 파괴됐고 수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2024년 8월에는 에베레스트 인근 네팔 타메 마을 위쪽에서 암석 눈사태가 빙하호를 덮치면서 호수가 터졌고, 쏟아져 내려온 물이 주택과 학교, 보건시설과 다리를 파괴했다. 네팔과 중국 티베트의 접경지역에서도 빙하호 붕괴로 인한 홍수가 반복되면서 도로와 교량이 끊기고 주민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히말라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알프스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빙하가 빠르게 후퇴하고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대규모 암석 붕괴와 산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안데스와 알래스카를 비롯한 다른 고산지역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드물게 발생했던 고산지대 재난이 점차 여러 대륙에서 반복되는 현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역습은 산악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기온이 올라가면 따뜻해진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고, 조건이 맞으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비를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다. 도시가 감당하도록 설계된 강수량 자체를 넘어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주에서 발생한 대홍수였다.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일부 지역에는 4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주 전체의 90% 이상이 홍수의 영향을 받았다. 160명 이상이 숨지고 58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다. 당시 연구진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가 이런 규모의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을 두 배 이상 높였고 비의 강도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SF 영화에서나 등장했던 ‘지구 멸망’
폭염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과거라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여겨졌던 고온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024년 여름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등 지중해 주변 국가들을 덮친 폭염도 그런 사례다. 연구 결과 당시와 같은 폭염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발생하기 어려웠으며, 현재보다 기온이 낮았던 과거의 기후에서는 같은 상황에서도 기온이 약 3도 정도 낮았을 것으로 분석됐다. 3도라는 차이는 숫자로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에 가까운 폭염에서는 단 몇 도의 차이가 열사병과 사망자를 크게 늘리고, 전력 사용량과 산불 위험까지 넢일 수 있다.
산불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3년 캐나다에서는 한 해 동안 1,300만㏊가 넘는 숲이 불탔다. 대한민국 전체 면적보다도 넓은 규모다. 산불 자체는 번개나 사람의 실수 등 여러 이유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산불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온이 높아지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나무와 풀이 훨씬 쉽게 불이 붙는 상태가 되고 한번 시작된 불도 더 빠르고 크게 번진다. 실제로 캐나다 동부 지역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기후변화가 2023년과 같은 극심한 산불 위험을 만들어내는 날씨가 나타날 가능성을 크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대형 산불이 여러 해 연속 반복되고 있어 과거처럼 몇 년에 한 번 발생하는 예외적인 재난으로만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이제 인류는 거대한 위험에 맞서고 있다. 폭염, 홍수, 가뭄, 산불, 강력한 폭풍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해에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멸망’은 SF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러한 위험은 우리 옆에 너무 가까이 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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