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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26-10-05 18:36 (월) 로그인회원가입
시사논평

Polics 대한민국이 간절하게 필요한 나라들이 있다

최근 일본에서 낯선 표현 하나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활한론(活韓論)’이다. 말 그대로 한국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일본은 한국을 ‘자신을 따라하고 뒤쫓는 나라’ 정도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의 동맹 정책 변화,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동반자로 본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제 한국은 공급망과 에너지, 군사력과 방위산업에서 일본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런 변화는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재무장이 급해진 유럽, 조선업 기반이 약화된 미국, 에너지 안보를 다시 짜고 있는 중동과 유럽, AI 경쟁에 뛰어든 국가들까지 한국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필요로 하는 나라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을 ‘활용하자’는 일본

최근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은 매우 극적으로 변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최근 성장전략을 분석하면서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와 함께 한국을 주요 비교 대상으로 올렸다. 2000년 이후 일본의 생산자산 증가가 사실상 정체된 사이 한국은 두 배 이상 늘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일본이 한국을 단순한 추격국이 아니라 참고하고 배워야 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안보 분야에서는 변화가 더 빠르다. 올해 들어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잇따라 열렸고, 지난 6월에는 약 9년 만에 한일 수색, 구조 공동훈련이 재개됐다. 양국 국방당국은 AI를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 확대도 논의하고 있다. 한일 간 군수물자를 서로 지원할 수 있는 물품과 용역 상호제공협정의 필요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일본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중국의 군사력은 강해지고,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협력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더 이상 미국에게만 의존하기는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 혼자 대응하기에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따라서 자신을 도와줄 나라가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옆에 세계적인 제조업 기반과 대규모 군사력, 방산 생산능력을 동시에 가진 한국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고 봐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일본 이외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곳은 유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은 이전 5년과 비교해 세 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돈이 있어도 무기를 제때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유럽 방산업체들의 생산능력만으로 갑자기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틈을 가장 빠르게 파고든 나라가 한국이다. 폴란드는 K2 전차와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천무 다연장로켓을 대규모로 도입했다. 2025년에는 K2 전차 180대를 추가로 도입하는 계약까지 체결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된다. 천무 역시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이 단순히 완제품을 팔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의 방산 생산기반까지 함께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방산이 유럽에서 경쟁력을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만 싸기 때문은 아니라 빠른 납기와 대량생산 능력,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함께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 업체들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한국 업체들이 짧은 납기와 경쟁력 있는 가격, 적극적인 기술 이전을 앞세워 시장을 넓힐 수 있었던 이유다.

세계가 찾는 ‘빨리 만드는 나라’

미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특히 조선업에도 유독 두드러진다. 미국은 세계 최대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선과 군함을 건조하고 수리할 수 있는 조선 산업의 기반은 오랫동안 약해졌다. 지난해 한국 조선소가 미 해군 군수지원함의 7개월짜리 대규모 정비를 마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미 해군은 한국 조선소의 대규모 정비 능력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작전 준비태세를 높이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조선업 재건 구상에서도 한국 조선업체의 투자와 기술은 핵심적인 축으로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변화는 제조업의 의미 자체도 바꾸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선진국들은 공장을 비용의 문제로 보고 해외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쟁과 공급망 단절을 겪고 나니 공장은 ‘생산 기지’가 아닌 ‘안보 자산’이 됐다. 아무리 설계도를 가지고 있어도 생산라인과 숙련된 인력, 부품업체가 사라지면 필요한 물건을 단기간에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다시 주목받는 배경에는 바로 반도체부터 전차와 군함, 원전까지 실제로 만들어본 제조업 생태계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이 필요한 이유는 무기와 배만이 아니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 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는 세계 HBM 시장의 약 58%를 차지했다. 전체 D램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합치면 60%를 훌쩍 넘는다. AI 데이터센터를 확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은 단순한 해외 공급업체가 아니라 자국 AI 산업에서 생길 다양한 문제를 풀어줄 ‘친절한 파트너’에 가깝다. 미국 정부가 SK하이닉스의 인디애나 HBM 생산·패키징 시설에 대규모 지원을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사회의 진정한 경쟁력

원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고 있다. 체코는 지난해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최종 계약을 한국수력원자력과 체결했다. 체코 정부가 이 사업을 단순한 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고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규정했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만 하다. 아랍에미리트 역시 바라카 원전을 계기로 한국과 원전 운영, 방산, 첨단기술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물론 한국이 모든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나라’라고 보기는 힘들 수 있다. 캐나다의 차기 잠수함 사업에서는 독일 업체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고 한국 업체는 예비공급자로 남았다. 중국은 제조업 규모에서 한국을 압도하고,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한국보다 앞선 원천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특별하다’라고 할 정도이다. 과거 한국은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방면의 능력과 기술을 갖춘 나라가 됐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 전문이 아니라, 여러 산업의 영역에서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많은 국가들은 ‘우리가 부족한 것을 메워줄 나라’로 한국을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은 단순히 돈이 많거나, 군사력이 강한 나라만은 아니다. 다른 나라가 급할 때 대신해줄 수 없는 기술과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진정으로 매력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힘은 앞으로도 찾는 나라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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